까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 별의 길이라고도 불리는 이 오래된 순례길은 수백 년 동안 전 세계 순례자들의 발걸음을 이끌어왔어요. 저 역시 일상에서 벗어나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싶어 프랑스길(Camino Francés) 코스를 걷기로 결심했어요. 33일간의 여정은 단순한 여행이 아닌, 제 삶을 되돌아보고 새롭게 바라보는 특별한 경험이 되었답니다.
순례의 시작, 프랑스에서 스페인으로
제 여정은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 지역인 생장피에드포르(Saint-Jean-Pied-de-Port)에서 시작되었어요. 이곳은 전통적인 프랑스 마을로, 아름다운 돌담길과 붉은 지붕의 건물들이 여행자를 반겨주었어요. 순례자 사무소에서 '크레덴시알(Credencial)'이라 불리는 순례자 여권을 발급받은 후, 설레는 마음으로 첫날의 여정을 준비했어요.
첫날은 가장 힘든 구간 중 하나로 알려진 피레네 산맥을 넘는 코스였어요. 25kg의 배낭을 메고 1,400m 고도의 산맥을 오르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고된 일이었어요. 비가 내리고 안개가 자욱한 날씨 속에서 가파른 오르막을 걷다 보니, "내가 왜 이 길을 선택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죠. 하지만 문득 안개 사이로 보이는 파노라마 같은 경치에 모든 피로가 눈 녹듯 사라졌어요.
저녁에는 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의 중세 수도원을 개조한 알베르게(순례자 숙소)에 도착했어요. 이곳에서 처음으로 다른 나라에서 온 순례자들과 함께 식사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들의 다양한 동기와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큰 영감을 받았어요. 호주에서 온 60대 부부는 은퇴 후 꿈꿔왔던 여행으로 까미노를 선택했다고 했고, 브라질에서 온 30대 여성은 큰 상실 이후 치유의 시간을 찾아 이 길을 걷고 있었어요. 각자의 이유는 달랐지만, 모두 무언가를 찾아 이 길을 선택했다는 공통점이 있었죠.
둘째 날부터는 본격적으로 스페인 나바라(Navarra) 지방의 아름다운 풍경 속으로 들어갔어요. 완만한 언덕, 끝없이 펼쳐진 밀밭, 그리고 중세 마을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주었어요. 특히 푸엔테 라 레이나(Puente la Reina)의 로마네스크 양식의 다리는 너무 아름다워서 오랫동안 그 위에 서서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았답니다.
메세타에서의 고독과 명상의 시간
프랑스길의 중간 구간은 '메세타(Meseta)'라 불리는 스페인의 고원 지대를 지나게 돼요. 끝없이 펼쳐진 평원과 황금빛 밀밭, 그리고 하늘만 보이는 이 구간은 많은 순례자들이 지루하다고 느끼지만, 저에게는 가장 의미 있는 시간이었어요.
메세타에서의 걷기는 명상과도 같았어요. 주변의 풍경이 단조로워지니 자연스럽게 내면으로 시선이 향하게 되었고, 그동안 바쁜 일상 속에서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깊은 질문들과 마주하게 되었죠. '내가 정말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 '지금까지의 선택들은 진정 내가 원했던 것이었나' 같은 질문들이 끊임없이 떠올랐어요.
메세타의 작은 마을들은 또 다른 매력이 있었어요. 오르니요스(Hornillos del Camino)나 카스트로헤리스(Castrojeriz) 같은 마을들은 단 하나의 거리로 이루어진 작은 마을이지만, 수백 년의 역사를 품고 있었어요. 석양이 질 무렵, 마을의 유일한 바에서 만난 현지인들과 함께 와인 한 잔을 나누며 나눈 대화는 소중한 추억이 되었답니다.
한 가지 인상적이었던 것은 메세타 구간의 '크루즈 데 페로(Cruz de Ferro)'라는 철제 십자가였어요. 순례자들은 고향에서 가져온 작은 돌을 십자가 아래 두고 자신의 짐(물리적이든 정신적이든)을 내려놓는 의식을 해요. 저도 한국에서 가져온 작은 돌에 제 걱정과 후회를 담아 두고 왔는데, 정말로 마음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메세타 구간에서는 매일 30km 가량을 걸었는데, 처음에는 발바닥에 물집이 생기고 근육통으로 고생했지만, 점점 몸이 길에 적응하면서 걷는 것 자체가 즐거움으로 변해갔어요. 아침 일찍 출발해 이슬이 맺힌 들판을 걷고, 때로는 다른 순례자들과 함께, 때로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자연과 하나가 되는 경험은 도시 생활에 지친 제 영혼에 큰 위안이 되었답니다.
갈리시아의 푸른 숲과 산티아고에서의 감동
메세타를 지나 갈리시아(Galicia) 지방에 들어서니 풍경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건조한 평원 대신 푸른 숲과 초원, 안개 자욱한 계곡이 나타났죠. 스페인의 가장 북서쪽에 위치한 이 지역은 아일랜드나 영국과 비슷한 켈트 문화의 영향을 받아, 독특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어요.
오세브레이로(O Cebreiro)라는 마을에서는 전통적인 팔로사(pallozas)라 불리는 원형 짚 지붕 집들을 볼 수 있었어요. 이 마을은 해발 1,300m에 위치해 있어 구름 위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고, 마을 교회에서는 성배 전설과 관련된 유물도 볼 수 있었어요. 저녁에는 현지 전통 음식인 콜도 갈레고(caldo gallego, 갈리시아식 스프)와 풀포 아 페이라(pulpo a feira, 갈리시아식 문어요리)를 맛보았는데, 순례길에서 먹은 음식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맛이었어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약 100km 지점인 사리아(Sarria)부터는 순례자들이 급격히 늘어났어요. 이곳부터 출발하면 순례 증명서를 받을 수 있는 최소 거리인 100km를 충족하기 때문이에요. 갑자기 붐비는 길이 처음에는 조금 실망스러웠지만,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이 또 다른 즐거움을 가져다주었어요.
마지막 날, 몬테 도 고소(Monte do Gozo)에서 처음으로 산티아고 대성당의 첨탑이 보였을 때의 감동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워요. 한 달 넘게 걸어온 여정의 끝이 눈앞에 보이는 순간, 기쁨과 아쉬움이 동시에 밀려왔어요. 마침내 오브라도이로 광장(Plaza del Obradoiro)에 도착해 산티아고 대성당 앞에 섰을 때, 많은 순례자들이 그랬듯이 저도 눈물을 참을 수 없었어요.
순례자 사무소에서 '콤포스텔라(Compostela)'라는 공식 순례 증명서를 받고, 대성당에서 열리는 순례자 미사에 참석했어요. 미사 중에는 세계 최대의 향로인 '보타푸메이로(Botafumeiro)'가 성당 천장을 가로질러 흔들리는 장관을 볼 수 있었는데, 이것으로 저의 긴 여정이 완벽하게 마무리되었답니다.
33일간의 산티아고 순례길 여정은 제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경험 중 하나였어요. 800km가 넘는 거리를 걸으며, 몸은 지치고 발은 아팠지만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워졌어요. 다양한 국적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의 만남, 자연과의 교감, 그리고 깊은 자아성찰의 시간은 제 삶을 바라보는 시각을 완전히 바꿔놓았답니다.
만약 여러분도 산티아고 순례길을 계획하고 있다면, 몇 가지 팁을 드릴게요. 우선, 가벼운 배낭이 핵심이에요. 절대로 배낭 무게가 신체 무게의 10%를 넘지 않도록 하세요. 좋은 신발과 양말은 필수이고, 날씨가 자주 변하는 갈리시아 지방을 위한 방수 재킷도 잊지 마세요. 알베르게는 선착순이므로 인기 있는 마을에서는 일찍 도착하는 것이 좋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열린 마음과 여유로운 일정을 가지세요. 서두르지 않고 풍경을 즐기고, 만나는 사람들과 대화하며, 때로는 계획에 없던 마을에서 하루를 더 머무는 유연함이 이 여정의 가장 큰 즐거움일 테니까요.
'부엔 까미노(Buen Camino)!' - 좋은 여정 되세요.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여러분만의 특별한 경험을 만들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