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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여행/그 외 나라들

대만 타이베이 3박 4일 여행 후기, 야시장에서 밥값으로 본전 뽑은 이야기

by bktravel 2026. 3. 4.

대만 3박 4일, 밥값만으로도 본전 뽑는 여행

처음 대만행 비행기 표를 끊었을 때 솔직히 큰 기대는 없었다. 가까우니까, 저렴하니까, 짧은 휴가에 딱이니까. 그 정도 이유였다. 그런데 돌아온 지 한 달이 넘었는데 아직도 루러우판 생각이 난다. 길에서 쪼그려 앉아 먹던 그 작은 그릇 하나가 자꾸 떠오른다는 게 좀 웃기긴 한데, 대만이 그런 곳이었다. 화려하진 않은데 계속 생각나는.

인천에서 2시간 반. 타오위안 공항에 내리면 대만이다. 입국 수속이 빠른 편이라 짐 찾고 나오는 데까지 한 시간이면 충분했다. 공항에서 타이베이 시내까지는 MRT 공항선을 타면 35분쯤 걸리는데, 이지카드(悠遊卡)를 공항 편의점에서 하나 사두면 지하철, 버스, 편의점 결제까지 전부 해결된다. 충전식이라 남은 금액은 돌아올 때 편의점에서 쓰면 그만이고.

Shilin Market 스린 야시장
Shilin Market 스린 야시장

첫째 날 — 도착하자마자 야시장부터 간 이유

숙소에 짐만 던져두고 스린 야시장으로 향했다. 보통은 도착 첫날 고궁박물관이나 중정기념당 같은 데부터 가는 게 정석이라고 하는데, 나는 도저히 배가 고파서 참을 수가 없었다. 비행기에서 기내식을 건너뛴 게 결과적으로 신의 한 수였다.

스린 야시장은 지하철 젠탄역(劍潭站)에서 내리면 바로다. 스린역이 아니라 젠탄역이라는 걸 모르면 한 정거장을 더 가게 되니까 이건 기억해두는 게 좋다. 야시장에 들어서면 일단 사람 냄새와 기름 냄새가 동시에 확 밀려온다. 좁은 골목 사이로 수백 개의 노점이 빼곡히 들어차 있는데, 규모가 진짜 장난이 아니다. 우리나라 야시장을 떠올리면 안 된다. 차원이 다르다.

여기서 먹은 것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다지파이(大雞排)였다. 얼굴만 한 크기의 닭 튀김인데,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고 양념이 은근히 매콤해서 맥주 생각이 간절해진다. 가격은 75TWD, 한국 돈으로 3천 원 정도. 이 가격에 이 크기라니, 처음엔 눈을 의심했다. 옆에서 파는 지파이(鷄排)랑 헷갈릴 수 있는데 다지파이가 좀 더 크고 두껍다.

그리고 대만 와서 버블티를 안 마시면 그건 대만에 안 간 거라고들 하던데, 과장이 아니었다. 50嵐(우스란)이라는 체인에서 마신 펄밀크티가 한국에서 먹던 것과는 확실히 달랐다. 펄이 좀 더 말랑하고 차 맛이 진했다. 가격은 중간 사이즈 기준 55TWD.

예류 지질공원 여왕머리바위
예류 지질공원 여왕머리바위

둘째 날 — 예스진지, 하루 종일 돌아다녀도 부족한 코스

대만 여행에서 거의 국룰처럼 불리는 코스가 있다. 예류-스펀-진과스-지우펀, 줄여서 '예스진지'. 이 네 곳을 하루에 묶어서 돌아보는 건데, 대중교통으로는 동선이 꼬여서 택시 투어를 이용하는 게 현실적이다. 나는 Klook에서 미리 예약했고, 기사님이 한국어를 좀 하시는 분이라 편했다. 4인 기준 1인당 2만 원대면 왕복 교통비 포함이라 가성비가 괜찮다.

예류 지질공원이 첫 번째 목적지였다. 바닷바람과 파도에 깎여서 만들어진 기암괴석들이 해안을 따라 늘어서 있는 곳인데, 사진으로 보는 것과 직접 보는 것의 차이가 큰 장소였다. 특히 '여왕머리바위'가 유명한데, 침식이 계속 진행 중이라 언젠가는 목이 부러질 거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바위 앞에 줄이 꽤 길다. 여기서 사진 한 장 찍으려면 20분은 기다려야 할 각오를 해야 한다. 입장료는 80TWD.

스펀에서는 천등(天燈)을 날렸다. 솔직히 처음엔 "이거 관광객 낚시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막상 등에다 소원을 적고 불을 붙여서 하늘로 올려보내는 순간, 생각보다 뭉클했다. 기차길 한가운데 서서 등을 날리는 풍경이 독특한데, 실제로 핑시선 기차가 이따금 지나가기 때문에 기차 소리가 들리면 재빨리 옆으로 비켜야 한다. 천등 하나에 150TWD. 4면에 각각 다른 색이라 색깔마다 소원의 의미가 다르다. 빨강은 건강, 노랑은 재물, 파랑은 사업, 보라는 학업.

진과스는 일제시대 금광 마을이었던 곳이다. 황금박물관에서는 220kg짜리 순금 덩어리를 직접 만져볼 수 있는데, 만지면 부자가 된다는 속설 때문인지 금 표면이 반질반질하게 닳아 있었다. 여기서 먹는 광부도시락도 나름의 경험인데, 철제 도시락통에 담긴 소박한 밥과 반찬이 옛날 광부들의 식사를 재현한 거라고.

그리고 마지막 지우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배경지라고 알려진 곳이다. 스튜디오 지브리 측에서 공식적으로 부정한 적이 있다고는 하는데, 가보면 솔직히 "여기 맞는데?" 싶은 장면이 계속 나온다. 좁은 계단 골목에 빨간 등이 줄지어 걸려 있고, 양옆으로 찻집과 기념품 가게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풍경이 해질 무렵에 특히 분위기가 좋다. 팁 하나 — 지우펀은 되도록 해 지기 한 시간 전에 도착해야 야경까지 볼 수 있다. 낮에만 보고 오면 매력의 반도 못 느낀다.

셋째 날 — 타이베이 시내, 그리고 의외의 베이터우

이날은 좀 여유 있게 움직였다. 오전에 국립고궁박물관을 보고, 오후에 베이터우 온천 마을을 다녀오는 일정.

국립고궁박물관은 세계 4대 박물관으로 꼽히는 곳인데, 소장품이 약 70만 점이라 하루에 다 보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나는 가이드북에서 추천하는 필수 관람 코스 위주로 2시간 정도만 봤다. '취옥백채'(배추 모양 옥 조각)와 '육형석'(돼지고기 모양 돌)이 이 박물관의 양대 스타인데, 실물은 생각보다 작아서 좀 당황스러울 수 있다. 입장료 350TWD.

오후에 간 베이터우는 진짜 의외의 수확이었다. 타이베이 시내에서 MRT로 30분이면 가는 온천 마을인데, 일본 식민지 시절에 개발된 온천 지역이라 분위기가 묘하게 일본 소도시 같다. 지열곡이라는 곳에 가면 유황 냄새가 코를 찌르고 연기가 피어오르는 계곡이 나오는데, 그 옆에 무료 족탕이 있다. 하루 종일 걸어다녀서 피곤한 다리를 담그고 있으면 그냥 거기서 살고 싶어진다.

온천을 즐기려면 개인 탕이 있는 곳을 이용하는 게 편한데, 나는 숙소 근처에서 1인 개인탕을 이용했다. 가격은 시설에 따라 300~800TWD 정도. 대중탕은 수영복이 필요하고, 일부 노천탕은 남녀 구분이 없는 곳도 있으니 미리 확인하는 게 좋다.

저녁에는 라오허제 야시장에 갔다. 스린보다 규모는 작지만 먹거리의 밀도가 높다는 평을 듣고 간 건데, 확실히 음식 퀄리티가 한 단계 위인 느낌이었다. 특히 후추떡(胡椒餅)을 여기서 처음 먹어봤는데, 화덕에 붙여서 구워내는 방식이라 겉은 빵처럼 바삭하고 안에는 후추로 간한 돼지고기 소가 가득 들어 있었다. 가격은 60TWD인데 줄이 20분은 기본이다. 줄 서는 게 싫으면 야시장 입구 말고 안쪽에 있는 가게를 찾아보면 대기가 좀 짧다.

넷째 날 — 중정기념당, 그리고 공항에서의 마지막 쇼핑

마지막 날 아침. 체크아웃하고 짐을 숙소에 맡긴 뒤 중정기념당으로 갔다. 장제스를 기리는 기념당인데, 건물 자체보다는 그 앞에 펼쳐진 광장의 스케일에 먼저 눈이 간다. 계단이 89개인데, 장제스가 세상을 떠난 나이를 상징한다고 한다. 매 정시에 위병 교대식이 있으니 시간을 맞춰서 가면 볼거리가 하나 더 생긴다.

기념당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영강제 우육면(永康街牛肉麵)이라는 유명한 골목이 있다. 여기서 먹은 우육면이 이번 여행의 마지막 식사였는데, 진한 소고기 국물에 쫄깃한 면, 그리고 덩어리째 들어간 소고기가 인상적이었다. 한 그릇에 220TWD. 한국 돈으로 만 원이 안 되는 가격에 이 정도 퀄리티라니, 대만의 물가가 새삼 고맙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공항으로 가는 길에 타오위안 공항 면세점에서 펑리수(鳳梨酥)를 샀다. 대만 기념품의 정석인 파인애플 케이크인데, 브랜드별로 맛이 꽤 다르다. 지아더(佳德)가 가장 유명하고 시내 본점은 항상 줄이 길지만, 공항에서도 살 수 있으니 시간이 없으면 공항에서 사도 무방하다. 다만 공항 가격이 시내보다 조금 비싸다는 건 감안해야 한다.

실질적으로 도움 될 정보 몇 가지

경비 — 항공권 왕복 15-25만 원(시즌에 따라 변동), 숙소 1박 5-8만 원(시멘딩 근처 비즈니스호텔 기준), 하루 식비 3-5만 원이면 넉넉하다. 총 경비는 항공 포함 60-80만 원 선이면 꽤 여유 있는 여행이 가능하다.

환전 — 한국에서 대만 달러(TWD)로 직접 바꾸는 것보다 달러를 가져가서 현지 은행에서 환전하는 게 유리하다. 아니면 트래블월렛 같은 선불카드를 충전해서 가는 것도 방법이다. 타이베이 시내에서는 카드 결제가 대부분 되지만, 야시장이나 소규모 식당은 현금만 받는 곳이 많다.

교통 — 이지카드 하나면 MRT, 버스, YouBike(공유 자전거)까지 전부 탈 수 있다. 타오위안 공항에서 타이베이까지는 MRT 공항선(160TWD), 시내 이동은 MRT 기본 요금이 20TWD부터 시작한다. 택시는 기본요금 70TWD로 한국보다 저렴하지만, 기사님이 한국어는커녕 영어도 잘 안 통하는 경우가 많아서 목적지 한자 주소를 미리 캡처해가는 게 좋다.

날씨 — 대만은 아열대 기후라서 여름(6-9월)에는 찜통 수준으로 덥고 비도 많이 온다. 여행 적기는 10~12월. 기온이 20도 안팎으로 돌아다니기 딱 좋고, 비도 적은 편이다. 다만 겨울(1-2월)에는 한국만큼은 아니어도 바람이 꽤 차기 때문에 얇은 외투 하나 정도는 챙기는 게 좋다.

유심/eSIM — 공항 도착 로비에 통신사 부스가 여러 개 있어서 거기서 바로 살 수 있다. 3일 무제한 데이터 기준 300TWD 정도. 요즘은 eSIM을 미리 구매해서 가는 사람이 많은데, Klook이나 KKday에서 한국어로 주문 가능하고 가격도 비슷하다.


대만은 거창한 유적이나 압도적인 자연경관으로 승부하는 여행지는 아니다. 대신 골목마다 숨어 있는 작은 식당에서 저렴한 가격에 놀라운 맛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고, 어딜 가든 친절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곳이다. 3박 4일이면 타이베이와 근교를 돌아보기에 딱 적당한 시간이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는 "다음에는 가오슝이나 타이중 쪽도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이미 들고 있을 거다.

최소한의 준비만 하면 되는 가벼운 여행지. 그런데 돌아온 뒤에는 의외로 오래 기억에 남는 여행지. 내가 느낀 대만은 그런 곳이었다.